발렌타인

ⓒ 코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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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세계에는 밸런타인데이라는 날이 있다고 했다. 그날에 얽힌 이야기는 이것저것 많았지만 간단하게 줄이자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여자아이가 힘을 내고 용기를 내는 날이라고 했다. 간단한 선물, 주로 초콜릿을 선물하며 제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고. 사랑……. 이데아 슈라우드는 그 짧은 단어를 반복하며 제 지저분한 책상에 놓인 종이 상자를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보물상자 보듯이 바라보았다. 자꾸만 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데 한편으로는 목이 타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황홀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서 상자를 응시하다가 입을 가렸다. 후히히히. 자꾸만 입술 틈으로 비집어 나오는 웃음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낡은 기숙사의 감독생이 오늘 아침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부러 자신을 찾아와 건네주고 떠난 초콜릿 상자였다.

 “뭐, 뭐, 졸자는 그런 인싸들의 이벤트 따위 관심 없지만 말이지요? 그래도 여자아이가 용기를 냈으면 받아주는 게, 뭐, 사나이의 도리 아니겠습니까요.” 그는 상자엔 손도 대지 못하고 히죽거리며 웃다가, 문득 지금은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져 컴퓨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교내 CCTV를 해킹해 원하는 곳을 볼 수 있는 것은 그에겐 쇼핑몰에서 과자를 주문하는 것보다도 간단한 일이었다. 그녀는 농땡이를 부리지 않는 성실한 학생이니 지금쯤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일학년들이 수업을 듣는 교실 카메라에 접속했다.

 그의 예상대로 그녀, 레브는 양옆에 자신의 친구들을 끼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흥. 그는 오늘따라 그녀의 친구인 남학생들이 꼴 보기 싫어 코웃음을 쳤다. 그래봤자 그녀의 초콜릿을 차지한 건 졸자……, 잠깐, 뭔가가 이상했다. 그는 입을 딱 벌리고 거북목을 길게 빼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녀 옆에 앉은 남학생들의 책상 위에 이상한 것들이 올려져 있었다. 그건, 교내 매점에서 제일 인기가 있는 초콜릿 과자 상자였다.

 이럴 수가……. 이데아는 방금까지 햇빛이 짱짱하고 무지개가 펼쳐져 있던 마음속 하늘에 비구름이 끼는 것을 느꼈다. 특별한 건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분명 밸런타인데이는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라고 했는데……. 그렇지만 그녀가 어장관리를 하는 것처럼 여러 명의 남자에게 초콜릿을 대량으로 건네줄 것 같지는 않았다. 설령 그렇다면 그건 연애 목적이라고 해도 전혀 유일하지 않을, 흔해 빠진 마음이었다. 하기는 내가 뭐 좋다고 일부러 딱 하나뿐인 마음을 건네주겠어……. 당연한 일이지. 이데아는 급격히 침울해져서 아까까지만 해도 보물처럼 여기며 손도 못 대던 상자의 포장을 뜯었다. 이렇게 된 이상 얼른 먹어 치워버리기나 할 작정이었다.

 어라? 초콜릿 상자의 포장을 뜯은 이데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그녀의 친구들이 받은 초콜릿과는 뭔가가 달랐다. 그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어설프게 제 이름이 화이트초콜릿으로 적힌 검은 해골 모양 초콜릿을 내려다보았다. 해골의 눈은 하트 모양이었다. 이것은, 명백하게 그녀가 직접 손으로 만든 것이었다.

 아아! 이데아는 소리가 되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책상에 푹 엎드렸다. 역시 그 아이는 교활하다. 그렇지만 이런 교활함이라면 속아 넘어가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는 한참을 엎드려 있다가, 일어나 눈물을 글썽거리며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래서, 여자아이에게 답례로 주는 건 뭐가 좋지?